목차 1. 해방 후 한국학 연구 분위기 2. 8.15 해방과 역사학자의 동향 3. 학회의 결성과 학회지 4. 한국사의 서술 5. 해방 전 연구성과의 수용 문제 6. 방법론의 정비와 과제 7. 해방 후 한국사 연구의 의미
본문 4. 한국사의 서술 1) 해방 직후의 개설서 : 학회할동이 새롭게 일어났던 것과 아울러 단행본 저술이 늘어남, 교과서 종류가 많았는데 해방 후에는 대학교재사 전문서로 저술된 것이 많았다.
-통사로 간행된 개설서 (1)최남선, <신판조선역사>(1945) : 전통시대의 역사서술방식 + 문화사학의 방식 (2)문석준, <조선역사>(1945) <조선역사연구>(1946): 맑스주의, 북한에서 간행된 유일한 통사저술 (3)이병도김상기 <국사교본>(1946): 군정 치하의 국정 교과서, 1920년대 문화사학자의 관점 (4)김성칠, <조선역사>(1946): 한글전용, 쉬운 역사책, 문화사학의 서술방식 (5)조선사연구회, <조선사개설>(1946): 전공교재로 적합, 유물사관, (6)이병도, <조선사대관>(1948): 대학교재로 저술 “역사는 과학이다”, 변화적, 진보적, 발전적인 것으로 인식 (7)김상기, <조선사교정>(1948): 해방 후에 서울에서 간행된 유물사관에 의한 대표적 통사 저술서맑스주의의 도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 독자성+논리정연 (8)손진태. <국사대요>(1949): 교양서로 저술, 통사, 한국사발전과정의 독창적인 견해 표명, 실증사학 (9)오장환, <문화사-우리나라의 문화>(1949): 중등교과서, 한글전용, 문화주의적 구조논리 (10)이인영, <국사요론>(1950): 한국사를 민족을 주체로 한 자연환경, 역사환경, 국제환경과의 관계에서 이해하려고 노력, 국사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함께 추구
2) 시대사와 분류사의 양산 (1)각 시대사와 독립운동사 -시대사저술 -전통시대의 연구 : 이북만, <이조사회경제사연구>(1948) / 박극채전석담김한주박시형 <이조사회경제사연구>(1946) -구한말의 연구 : 김종국, <한국최근세사>(1947) / 김영건, <여명기의 조선>(1949)/ 이선근, <조선최근정치사> -현대사당대사 연구: 식민지 시기 사회연구 또는 독립운동사에 관한 간행물 ->독립운동사 간행물(해방직후 12권 간행물+팜플렛 9권) -해방이전: 박은식, <한국독립운동지혈사>(1920) / 해방이후: 최남선, <조선독립운동사>(1946) ->인물의 전기: 등장인물을 통하여 현대사 인식의 성향 파악 가능 (14권) -김구, <백범일지>(1947) / 이광수, <도산안창호>(1948) 한계: 독립운동사에 대한 저술이 적지 않았지만 빈약함. 현대사의 인식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었는데 그 후 1950년대 1960년대에 외면함. -통사와 시대사 저술 의의 ①식민지시기 이래 한국사학의 연구 성과를 종합 ②새로 연구한 결과물 ③식민사학의 극복이라는 한국사학으로서의 역할 ④독립운동사적 현대사인식의 확신 (2)분류사 단행본의 양산 -해방 후의 저술목록들을 보면서 생각해야 될 문제 (<경제사 분야>: 13권, <사회사 분야>: 9권, <문화사 분야>: 37권이 발행됨) ①분류사 연구에 대한 오늘날의 계속성 문제 ②정치사 연구가 부진: 전통시대의 정치사연구는 거의 없음 ③저자 가운데 식민지시기에 친일문필을 휘두른 이가 쉽게 발견됨
본문내용 시기 축적된 연구가 폭발한 것. 이 시기에 간행된 책에 대한 관점1. 식민지시기 한국 사학의 성과를 얼마나 계승 발전? 2. 식민지시기에 개척한 여러 역사방법론을 당연히 반추하고 새롭게 발전시켜야 했는데 어떻게 처리했나? 3. 식민사학의 문제는 어떻게 수습하고 그의 잔재를 청산하려 노력? 4. 분단정국으로 이행되어 갈 때 한국사 연구가 어떻게 존재하고 발전되어 갔나? 2. 8.15 해방과 역사학자의 동향 구한말 이래 사학자 다수 배출했으나 사망, 병, 사회정계활동 진출, 월북 등으로 연구 인원 감소. 한편 해방과 더불어 은둔학자와 망명학자, 신진학자가 참여하고 식민사학자 역시 새로운 글을 씀으로써 한국사 연구 활발하게 추진 -특히 은둔학자나 망명학자가 연구해온 것을 해방을 맞아 발표한 경우가 가장 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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