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지도와 임나일본부
목차 칠지도와 임나일본부 1. 칠지도란? 1) 칠지도의 제작시기 2) 칠지도의 제작이유 3) 검토 2. 임나일본부란? 1) 임나일본부의 근거 2) 임나일본부의 비판 3) 임나일본부의 현실 결론 본문 七支刀좌우 세개 위로 한 개 총 일곱개의 가지를 가진 길이 74cm의 창모양 철제 칼 날의 앞 뒤에는 금으로 상감한 명문 총 61자가 새겨짐 백제의 왕세자가 일본에 준것으로 현재 일본 나라현 덴리시 이소노카미신궁에 보관되어 있음 왜와 삼국(특히 백제)의 관계, 임나일본부와 관련하여 논쟁의 중심에 있는 유물 칠지도는 아래에서1/3 지점이 부러져있고 연마 작업 중에 일부 글자가 훼손되어 오늘날 일부 글자들을 알 수가 없다. 때문에 완전하지 않은 명문을 해석하는데 는 여러 학자들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특히나 그 공개과정에 있어서 일본 사학자 들과 이소노카미 신궁 측의 미심쩍은 태도 때문에 그들의 해석은 더욱 의심스럽다. 한국 학자들의 해석 ※태화=백제 고유의 연호로 보는것이 일반적 - 태화=근초고왕의 연호 372년 주장, 이병도 - 태화=전지왕의 연호 408년 주장, 손영종 - 태화=무령왕의 연호 504년 주장, 연민수 본문내용 1) 임나일본부의 근거 2) 임나일본부의 비판 3) 임나일본부의 현실 결론 칠지도란? 七支刀좌우 세개 위로 한 개 총 일곱개의 가지를 가진 길이 74cm의 창모양 철제 칼 날의 앞 뒤에는 금으로 상감한 명문 총 61자가 새겨짐 백제의 왕세자가 일본에 준것으로 현재 일본 나라현 덴리시 이소노카미신궁에 보관되어 있음 왜와 삼국(특히 백제)의 관계, 임나일본부와 관련하여 논쟁의 중심에 있는 유물 칠지도에 새겨진 명문 61자 (泰)四年五月十六日丙午正陽造百練七支刀(出)百兵宣供供侯王????(祥) 先世以來未有此刀百(濟)王世(子)奇生聖音故爲倭王指造傳示後世 태? 4년 5월 16일 병오날 12시에 백 번 제련한 쇠로 칠지도를 만들었으니 나아가 온갖 병사를 물리치리라. 후왕에게 적합하다상서로우리라 예전에는 이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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